야마시타 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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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정치인. 일본 정계에서는 보기 드문 검찰관 출신 의원[2] 으로 법무대신 정무관, 법무대신 등을 역임했다.
2. 생애[편집]
1965년 카가와현 타카마츠시에서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그러나 성장기는 세토내해 건너편인 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에서 보냈는데, 오카야마 시립 우노 초등학교와 오카야마대학 교육학부 부속중학교 졸업 후 오카야마 5대 명문인 오카야마 소잔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학업 성적이 우수해 도쿄대학 법학부에 진학했는데 대학 시절 같은 클래스의 동기로 후루카와 요시히사 법무대신과 시바야마 마사히코 전 문부과학대신이 있다. 대학 재학 중이었던 1989년 11월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0년 3월 도쿄대를 졸업한 후 사법연수소에 입소했으며(사법수습 44기), 1992년 4월 검사로 임관했다.[3]
임관 후 도쿄, 돗토리, 요코하마, 모리오카의 각 지방검찰청에서 근무했으며 1996년~1997년엔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컬럼비아 대학교 로스쿨 유학도 다녀왔다. 2000년 4월 법무성 형사국 근무 검사가 되어 국제수사공조, 조약교섭 등의 업무를 담당했으며 2002년 7월엔 재미국일본국대사관 1등서기관으로 파견됐다. 당시 대사관의 법률고문을 맡고 있었는데 일본 정부를 상대로 미국 법원에 제소된 위안부 관련 소송 대책을 지휘했으며 미국 연방대법원까지 다툰 끝에 승소했다.#
2005년 8월에 귀국했고 같은 해 10월 도쿄지검 검사로 이동했다. 특수부에 배속되어 방위사무차관이 연루된 뇌물 사건을 수사했다. 2008년 8월 법무성 형사국 국제과 국제형사기획관으로 발령났으며 형사관계조약의 협상 등을 담당했다. 2010년엔 게이오기주쿠대학 법학부의 강사를 겸임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렇듯 원래는 출세 코스인 법무성 형사국과 특수부에서 여러 차례 근무한 엘리트 검사였다.
2010년 12월 민주당 정권 하의 정치에 절망해[4] 정치를 바꿔보겠다는 일념으로 검사를 사직하고 자민당 지부장 공모에 응모했다. 2012년 제46회 중의원 총선에서 당시 오카야마현 제2구 중의원 의원이던 쓰무라 게이스케를 물리치고 당선됐다. 2014년 제47회 중의원 총선에서는 재선에 성공했다.
의원이 된 후에는 중의원 법무위원회, 후생노동위원회, 예산위원회, 헌법심사회 등에서 활동했다. 2015년 이시바 시게루의 수월회 결성에 동참한다.
이시바파임에도 아베 신조와 친분이 깊어 내각에서 중용되었다. 2017년 법무대신 정무관 겸 내각부대신 정무관에 임명되었고 2017년 제48회 중의원 총선에서 3선에 성공했다. 2018년 10월 제4차 아베 개조내각에서 3선 의원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법무대신에 기용되었다.[5] 이시바파 의원 중에선 유일한 입각이었다. 이때 대학 동기 시바야마 마사히코도 문부과학대신에 임명되면서 함께 입각했다.
법무대신 재임 중에는 특정 기능 제도를 신설하는 내용의 출입국관리 및 난민인정법 개정을 추진했다. 2019년 9월 개각 때 퇴임했다.
2021년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쓰무라 게이스케 후보에게 비례부활도 허용하지 않고 13% 차이로 크게 이기며 4선 의원이 됐다.
3. 한국 관련[편집]
- 한국 사법부가 위안부 소송에서 일본 정부에 배상 명령을 내린 것을 비판했다.#
4. 소속 정당[편집]
5. 선거 이력[편집]
6. 여담[편집]
- 취미는 조깅, 노래방, 음악감상 및 국수집 순회.
- 좋아하는 음악은 사잔 올 스타즈, 오자키 유타카, B'z, 이키모노가카리,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들은 클래식.
- 존경하는 사람은 사카모토 료마, 다카스기 신사쿠, 이누카이 쓰요시, 존 F. 케네디, 윈스턴 처칠.
- 좌우명은 "돌파력", "말하면 알수있다", "Just Do It!", "인생은 살아있기에 가치있다".
- 자민당 내에서는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대신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오부치 유코, 후쿠다 다쓰오 등과도 가깝다.
- 2022년 미스 동대 콘테스트에서 3위를 한 야마시타 리사(山下莉紗)가 그의 딸이라고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시라유리 여학원 출신으로 당시 도쿄대학 경제학부 3학년에 재학중이었다. 현지 정가의 인터뷰를 보면 야마시타 의원 본인도 미남이고 부인도 미인이라 딸이 예쁜 건 당연하다고 여기는 듯.
7. 둘러보기[편집]
[1] 고다 구니코와 생일이 같다.[2] 한국과 달리 일본은 정계에 입문하는 검사가 매우 적다. 야마오 시오리가 2021년 총선에 불출마하면서 현직 국회의원 중에 검사 출신은 야마시타만이 남았다.[3] 전 도쿄지검 특수부장인 모리모토 히로시(森本宏) 도쿄지검 차석검사가 그의 임관 동기다.[4] 당시 센카쿠 열도 앞바다에서 해상 보안청 순시선에 고의로 충돌해 체포된 중국인 선장을 검찰이 간 나오토 총리의 지시에 따라 처분 보류로 석방하는 것을 목격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였다고 한다.[5] 본래 대신직은 중의원 5선 이상은 되어야 자리가 돌아오는 경우가 많지만, 예외적으로 해당 분야 경력이 풍부하다면 선수와 무관하게 기용되기도 한다. 그는 정계에서 희귀한 20년 경력의 검사 출신이기도 했고, 그가 위안부 소송에서 승소한 이력이 법무대신에 기용된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되기도 했다.# 이를 알 수 있는 사례를 하나 더 들자면 하토야마 유키오의 아버지인 하토야마 이이치로는 첫 당선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초선 참의원 의원으로서 거의 정권 공동 운영자 수준의 거물이 맡는 자리인 외무대신에 기용되었는데, 그가 정계 입문 전에 일본 관료 사회의 정점인 대장성 사무차관을 맡았던 거물 관료였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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